검색결과
-
특허청, 지식재산권 보호·활용 정보 담은 책자 발간특허청은 특허·상표·디자인 등 지식재산권의 출원에서 심판까지 모든 절차를 알기 쉽게 풀어 쓴 '2024 지식재산권의 손쉬운 이용'을 발간했다고 4일 밝혔다. 특허청은 4일 특허, 상표, 디자인 등 지식재산권의 출원에서 심판까지 모든 절차를 알기 쉽게 풀어 쓴 책자인 '2024 지식재산권의 손쉬운 이용'을 발간했다고 밝혔다.책자에는 △특허 등 지식재산권의 개요 △출원부터 등록·심판까지의 절차 △수수료 납부 등 지식재산권 전반에 걸쳐 단계별로 필요한 신청서류, 작성방법, 유의사항, 수수료 납부 요령 등의 내용이 담겼다.또 상표 공존 동의제, 관련디자인 출원기간 확대, 특허 등의 수수료 체계 등 신설 또는 개편된 지식재산제도와 특허청 및 산하기관에서 지원하는 주요 시책 등도 수록했다. 상표 공존 동의제, 관련 디자인 출원 기간 확대, 특허 등의 수수료 체계 등 신설 또는 개편된 지식재산제도와 특허청 및 산하기관에서 지원하는 주요 시책 등도 수록했다. 특허청 누리집에서 전자문서(PDF) 형태로 내려받을 수 있고, 오는 8일 이후 특허청 고객지원실과 서울사무소, 지역별 지식재산센터 등에서 열람할 수 있다. 이인수 산업재산정보국장은 "모든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지식재산권에 대한 접근 편의성을 높이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
추모 공연이 된 제21회 대구아리랑축제무대는 북춤으로 정화되었다. 이어 진행자의 정중한 멘트가 이어졌다. "1956년 영천에서 출생, 60년대 말로부터 80년대 초 까지 서울에서 주경야독으로 전통소리를 연마,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고향 영천과 대구에서 경기민요와 영남민요의 무대화에 노력, 전국아리랑보존회 대구 지회장으로 활동, 2000년부터 본격적인 영남민요와 영남아리랑 전승 토착화,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 계기로 ‘대구아리랑’ 작창과 ‘대구아리랑축제’ 창안, 대구 최계란 명창 추모 행사와 경창대회 창안, '아리랑상'공로상 수상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 등재와 국가무형문화재 129호 지정에 기여,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 결성, 전승자 독려. '아리랑의 날' 선포식 참가 지난 대구아리랑축제 때만 해도 이 공간에서 지휘하던 그 분이 오늘 여기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 분은 지난 1월 초순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그 분, 우리가 사랑하는 아리랑 명인 정은하 선생이십니다. 이제 영정으로 모시고 오늘 행사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출연자들 그리고 관객 여러분, 보내시고 처음 맡는 행사인만큼 정은하 선생에 대해 목례로 추모의 예를 표해 주실 것을 청합니다.” 23일 대구 달성아트센터 청룡홀에서 21회 대구아리랑축제는 다소 무겁고 숙연한 분위기로 시작되었다. 행사를 준비한 제자들의 마음과 주요 출연자들인 영남지역 아리랑보존회 회원들, 그리고 기꺼이 먼 걸음으로 참여한 명창들과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반영한 듯하다. 오후 7시, ‘대구아리랑축제’ 첫 무대는 ‘최계란명창전국아리랑경창대회’ 명창부 대상 수상자 한승연의 ‘정선아리랑’으로 시작되었다. 정은하 선생의 의지로 시작된 대구아리랑경창대회는 지난해까지 16명의 명창을 배출하고 이번 17회는 정선 출신 한승연이 대상을 받았다. 이들을 통해 ‘대구아리랑’과 대구아리랑축제를 전국에 알렸다. 초청 명창의 무대는 제1회 때부터 첫 무대를 꾸며준 김길자 강원도무형문화제 1호 정선아리랑보유자와 70년대 초 ‘청구성악연구소’에서 함께 수학한 경기민요 이수자 이금미 명창이 긴아리랑으로 무대를 빛냈다. 영남의 아리랑을 대표하는 ‘영천아리랑(영천아리랑보존회 전은석)’ ‘울릉도아리랑(울릉도아리랑보존회 황효숙)’ ‘성주아리랑(성주아리랑보존회 임옥자)’ ‘상주아리랑(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 김학영,이상우)’ ‘경상도아리랑 (성주의병아리랑보존회 최문희)’ ‘독립군아리랑, 광복군아리랑(대구아리랑보존회 김상준, 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 허윤도, 김정수)’이 불려졌다. 이어서 ‘최계란 本 대구아리랑(동구지부 오은비)’ ‘정은하 本 대구아리랑(신수진, 전성희, 김천지부 허희자, 남구지부 백선혜, 경산지부 안정인, 달성군지부 성은주)’ ‘신대구아리랑(부회장 오은비, 이사 신수진)’ ‘밀양아리랑(수성구지부 조순남)’이 불려졌다. ‘부산아리랑(부산아리랑보존회 김희은)’ ‘홀로아리랑(이사장 곽동현)’ ‘본조아리랑(출연자 모두)’ ‘진도아리랑(어란이팀)’ 공연이 펼쳐졌다. 특별 순서인 정은하 선생 활동상을 보여준 동영상은 모두를 숙연케 했다. 영남지역 아리랑의 존재 부각을 위한 30여 년의 각고는 아리랑 역사에 길이 남는 역정임을 확인 시켜주었다. 특히 첫 제자인 영천아리랑보존회 전은석 대표, 부산아리랑보존회 김희은 대표, 울릉도아리랑보존회 황효숙 대표의 무대는 정은하 선생과의 각별한 교분으로 특별했다. 그리고 40여 년간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눠온 이인수 대구교육대 교수, 김상준 외 광복군아리랑 팀의 무대는 정은하 선생에 대한 많은 상념을 떠 올리게 한 무대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빛나고 듬직한 무대는 정은하 선생이 남긴 애 제자 곽동현, 신수진, 오은비가 불러준 신구 ‘대구아리랑’ 3곡을 연창으로 꾸민 공연이었다. 정은하 선생이 작창 한 최고의 창작 아리랑 1호인 ‘대구아리랑’을 부를 때는 객석 곳곳에서는 눈물을 훔치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어린 시절 정은하 선생의 손길에 의해 소리길을 밟아 어엿한 소리꾼으로 성장하여 이번 두 행사를 꾸린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다. 오전 9시 반 경창대회로부터 저녁 8시 반, 본 행사를 이어가는 동안 서로가 주고받은 눈길은 오는 정은하 선생의 1주기 추모공연을 하자는 합의였다. 이번에 참여하지 못한 역대 출연 명창인 이춘희, 강송대, 이호연 명창 등과 경창대회 배출 17명의 대상 수상자들이 함께하는 공연이었다. 그리고 대구시 ‘대구아리랑’ 보유단체 지정과 전국아리랑공연예술연합회 단체의 법인화를 이뤄내자는 묵시적 합의였다. 정은하 선생을 보낸 후 첫 행사는 단촐하지만 정성을 드린 무대였다. 진행자가 선생의 영정을 향해 "정은하 선생님 만족하셨지요. 든든하지요!”라는 멘트로 마무리 하였다. 정은하 선생의 부재를 극복하고 그 분이 심어 놓은 유지를 실천하자는 다짐을 가슴에 새기는 계기였다. 주최측은 "끝까지 자리를 지켜준 경산아리랑보존회 배경숙 회장을 비롯한 수많은 제자들, 대구 시민들과 한국국악협회 대구광역시 김신효 지회장 등에게 감사를 드린다"고 전했다.
-
한양대 음악대학 국악과 창설50주년 동문음악회 성료지난 9월 2일 저녁 7시, 한양대학교 백남음악관에서 1971년 창설된 한양대 음악대학 국악과 창설50주년 동문음악회가 개최되었다. 50년을 이어 온 한양대학교 국악과의 자긍심을 드높이는 축제의 장이었다. 세계 여러 나라들이 문화의 가치를 중시하고, 다양한 문화를 향유하고 교류하는 환경에서 한양대 음악대학 국악과 출신들의 활동이 활발함을 입증 하고 내일에도 는 전통음악 발전에 큰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다짐하는 자리였다. 한양대학교 국악과에 대해서는 설립자이신 김연준 박사의 예술교육에 대한 깊은 인식에서 석사과정, 박사과정으로 이어지는 완성된 교육체계를 확립했고, 이론과 연주 능력을 겸비한 국악인들을 배출하여 국악 발전과 중흥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음악회는 동문 상호간 소통을 통해 새로운 국악 미래 50년을 향하는 역할과 위상을 재정립하는 큰 뜻에 의한 행사다. 제1부는 이인수(73) 동문의 집박으로 ‘수제천’, 문정일(81) 동문의 등채로 ‘대취타 천년만세’로 시작하여 위촉작과 개작 초연의 4작품이 연주되었다. 합주곡 4번 주제에 의한 ‘추흥팔경화책(秋興八景畵冊)’ 개작초연(작곡 김용진 편곡/지휘 선중규), 16개 타악기를 위한 ‘시나위’ 개작초연(작곡 이상규 편곡/지휘 이경은), 관현악과 소리를 위한 ‘수궁환영(幻影)’ 개작초연(작곡 서순정 지휘 이상준), 소리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빛을 더하리’ 위촉초연(작곡 박경훈 지휘 이희복)작이 연주되었다. 총 90여명이 연주에 참여하였다. 현재 국악과는 전임 5명, 강사 74명이 재직하고, 학부생 123명, 석사 44명, 박사 43명이 수학중이다.
-
국악인 이은관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배뱅이굿의 대가 이은관(97)옹이 12일 오전 9시20분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1917년 강원도 이천에서 태어난 이옹은 16세 때 황덕렬에게 서도소리를 배웠다. 19세에는 황해도 황주권번 소리선생 이인수에게 배뱅이굿을 사사했다. 광복 후 대한국악원 민요부에서 활동했다. 이후 장소팔(1922~2002), 고춘자(1922~1994)와 함께 유랑 극단을 꾸려 서민들과 함께했다. 1960년대 '태평가' '아리랑' '노래가락' 등의 경기민요를 취입하고 라디오, 영화, TV 등에서 활약했다. 1968년 한국국악협회 감사, 1975년 한국국악협회 이사를 역임했다. 민속예술학원을 설립, 제자 양성에 힘을 쏟기도 했다. 198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중 배뱅이굿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1990년 보관문화훈장, 2002년 제9회 방일영국악상을 받았다. 지난 2월 건강한 모습으로 SBS TV 예능프로그램 '스타킹'에 출연하기도 했다. 4녀1남을 남겼다. 한양대병원 장례식장 10호실, 발인 14일 오전, 장지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02-2290-9442
-
배뱅이 화신으로 살아 온 외곬 50년, 이은관50여 년간 이은관(李殷官, 1917년 11월 27일생) 옹이 찢어 버린 배뱅이 아버지 갓은 모두 3000여 개가 넘는다. ······ 이 갓을 들고 보니이 갓은 우리 아버지 갓이 아니로구나(갈기갈기 갓을 찢고) ······또다시 이 갓을 들고 보니이것도 우리 아버지 갓이 아니로구나 ······(이번엔 울상을 지으며 쫘악쫘악 갓을 찢어 버린다). 이렇듯 신명 나기에 따라 배뱅이굿 한 판(약 1시간)에 서너 개씩 찢어 온 세월. 언뜻 한 판에 찢는 갓을 세 개씩만 어림잡아도 지금까지 이옹이 불러온 배뱅이굿은 1000번이 넘는다. 그것도 한 가지 소리로만 1000번 이상. 이젠 그쯤하고 지칠 때도 됐으련만 앞으로도 1000개 이상은 더 찢고 싶다고 욕심을 낸다.이옹의 연세를 알면 모두가 깜작 놀란다(이은관 옹은 2014년 3월 12일 향년 97세로 별세하셨다). "이은관 씨 나이가 벌써 그렇게 되었느냐.”고 되묻는다. 1950년대 라디오 시절부터 들어 온 높고 청아한 목소리만 기억할 뿐, 그를 좇아다닌 세월은 뒷전에 미뤄 놓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서도소리 기능 보유자(29호, 1984년)로 지정된 이씨는 물론 ‘관산융마(關山戎馬)’, ‘수심가(愁心歌)’, ‘난봉가타령’ 등 온갖 서도소리를 간드러지게 잘 부른다. 그러나 이씨가 배뱅이굿을 안 하고 ‘딴짓’을 하면 모여든 사람들은 예외없이 투덜댄다. 역시 배뱅이굿은 이은관 씨가 질러대야 제맛이 나고 이은관 하면 무조건 배뱅이굿이다. 이토록 이씨는 ‘이은관 = 배뱅이굿’이란 등식 속에 평생 동안 살아오고 있다.지금은 오갈 수 없게 된 강원도 이천군 이천면 회산리 에서 태어난 이씨는 부친의 ‘산 높고 골 깊으니 여기가 청산마루로구나’라는 농요(農謠) 작대기 장단 속에 꿈 많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그 아버지에 그 아들일런가. 아무튼 이씨는 천부적인 목구성을 타고 났다. 안방에서 악을 쓰면 부엌 살강의 ‘놋대접이 움직일 정도’로 목통이 컸다며 단전고성(丹田高聲)을 자랑한다. 이천공립보통학교 졸업과 함께 이천읍으로 이사한 이씨는 한때 백수건달 노릇을 했다. "은관이 너는 목청 좋으니 소리나 해 보라.”는 친구들의 부추김에 이천 명월관, 화산관 등을 드나들며 ‘객쩍은 소리’하고 공술이나 얻어먹는 신세였다. 아버지가 양자였던 탓에 할아버지 성화로 장가까지 일찍 가 놓았다(16세). ‘시골 건달’ 이씨는 우연찮게 황해도 건달 황덕열(黃德烈)을 만나면서 전연 뜻밖의 세계를 접하게 된다. 황해도 황주 권번 소리 선생인 이인수(李仁洙) 씨를 소개받은 것. 이씨의 그 때 나이 열 아홉이었다. 이렇게 해서 일생을 통해 울고 웃는 사이가 되어버린 배뱅이와의 첫인연이 맺어지게 된다. 이씨는 "얼굴도 모르는 최정승의 딸 배뱅이가 평생 나를 먹여 살리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며 천연덕스럽게 웃는다. 그렇다면 이은관 씨와 부부지간보다 더 자별해진 배뱅이는 도대체 누구인가.한 옛날 서울에 김정승, 이정승, 최정승 셋이 있었는데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지성으로 명산대찰에 빌어 난 딸들이 세월네(이정승), 네월네(김정승), 배뱅이(최정승). 이들이 자라 세월네와 네월네는 시집 가 잘사는데 배뱅이는 시주 나온 상좌중과 사연(邪戀)에 빠진다. 몰래 정을 통한 상좌중이 훌쩍 떠나 버리자 배뱅이는 그를 못 잊어 상사병으로 죽고 만다.한이 맺힌 최정승과 마누라는 죽은 딸의 넋이나마 만나 보겠다고 팔도의 유명 무당 모두를 불러 모은다. 이 때 평양의 가짜 박수무당이 이 동네 주막집에서 배뱅이집 내력을 미리 듣고 능청스런 넋두리와 울음으로 배뱅이 부모를 속여 많은 재물을 빼앗아 간다는 줄거리다. 어떻게 보면 딸 죽고 재산까지 날리는 분통 터지는 서민들의 한이 포개지지만 이은관 씨의 해학과 넉살좋은 재담으로 듣는 사람은 희비가 엇갈린다.이은관 씨 스승인 이인수 선생은 구한말 평안남도 용강의 유명 소리꾼이었던 김관준(金寬俊) 씨의 수제자. 김관준은 이인수 외에도 최순애(獨順愛), 김칠성(金七星), 김주호(金周鎬), 김밀화주(金密花珠) 등의 소리꾼을 제자로 두었으며 배뱅이굿, 안중근가, 까투리타령 등을 지었다고 전해진다.이렇게 배운 이은관 씨는 21세에 장연 권번 선생을 지내고 23세에는 ‘나도 한번 유명인이 되어 보자’고 무작정 상경한다. 황명선(黃明善, 건달 소리꾼) 씨 소개로 종로 권번에 가 배뱅이굿을 해대니 동기들은 평평 울어댔다. 이 때 최경식(崔景植) 씨를 만나 경기민요와 시조를 배워 두었다.이 때부터 이씨는 바빠졌다. 국일관 놀음청에 나가 장안에서 유명했던 신해중월(申海中月), 백목단(白牧丹) 앞에서 소리를 선보였고 김봉업(어름광대) 씨 단체에 들어가 가설 무대에도 섰다. 박진(朴珍, 작고, 연출가) 씨 소개로 신불출(申不出, 민요 재담가) 씨를 만나서는 국민복 입고 다니며 해방될 때까지 전국 곳곳을 유랑 극단으로 누볐다. 그 당시 군수 월급이 45원일 때 엿새 공연 나가 60원을 받았다고 한다. 어딜가나 ‘이은관의 배뱅이굿’은 3~4창의 열광이 보통이었다. 해방 뒤엔 대한국악원 민요부에 속해 세월을 보내다 장소팔, 고춘자(高春子) 씨와 유랑 극단을 만들어 서민들과 울고 웃으며 그들의 친구가 되었다. 음반 취입, 영화 ‘배뱅이굿’ 주연, 라디오ㆍTV 출연 등으로 돈도 벌고 인기도 누릴 만큼 누려온 그다. 미국, 일본, 베트남 등 명성만큼이나 해외 공연을 많이 다녔고 KBS 국악대상(1982년), 보관문화훈장(1990년)도 탔지만 그의 남은 꿈은 ‘제2의 이은관’을 길러 내는 일이다. 20년 전부터 차린 민속예술학원(서울 종로구 장사동 130의 1 삼성빌딩 4층)을 통해 배출된 제자들이 꽤 많지만 현역에서 뛰는 소리꾼이 많지 않다며 밝은 표정만은 아니다. 쓸 만한 제자가 불러도 이씨만큼 알아 주지 않아 힘이 빠진다는 하소연을 자주 듣는다는 것. 박준영(朴準英ㆍ35, 민요 학원), 박경옥(朴京玉ㆍ32, 부천), 인정임(印貞姙ㆍ34, 서울), 김경열ㆍ김경선(33, 쌍둥이, 재일), 최병문(28, 회사원), 박기옥(33, 재일) 씨 등이 이씨 소리제를 이어갈 동량(棟梁)들이다.1남6녀를 두어 모두 출가시키고 노부부가 ‘괜찮은 말년’을 보낸다고 했다. 젊은 시절 백수 건달, 권번 선생 등의 생활을 거쳐 오면서도 ‘가정만은 성역으로 꼭 지켜 내야 된다’는 생각을 가져 온 것이 지금도 대견스럽다고 한다.
-
5월부터 러시아 동포들과 함께 '아리랑코로나 부르기' 성료, 독도에서 제주까지,'아리랑코로나' 작사.작창:이혜솔 코로나 택시는 타고싶어도 못탔는데 코로나 바이러스 무섭어 도망간다 원수로다 원수로다 원수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원수로다 코로나 마마님은 언제 가시려나 구경일랑 그만하고 가시게나 바다건너 님 보고싶지만 가고 싶어도 갈수없네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산다지만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네
-
신한서재능경력대학원 5월 특별학위수여식재능경력인증 경제학부문 이수희박사, 전통무용학부문 윤성자, 정경희, 천춘자박사 신한서재능경력대학원 5월 특별학위수여식 재능경력인증 경제학부문 이수희박사, 전통무용학부문 윤성자, 정경희, 천춘자박사 신한서재능경력대학원(이사장/총장 함기철)은 지난 5월10일 충남예산 충의사윤봉길기념관 세미나실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작고 정직한 아름다운 학위수여식 재능경력인증 특별학위수여 식을 신한서재능경력대학원 함기철이사장을 비롯해 오장섭 전 건설교통부장관, 세계적인 바리톤 성악가 한서대학교 고성진교수, 순복음교회 원로목사 백승억목사, 한서대학교노인복지학과 이인수교수, 이계항교육행정학박사, (사)한밭국악협회 오정환회장, AIT University설립 준비위원장 노중호교수, 금융정보시스템 조이남명예회장, 금융정보시스템 송재문회장, 재능경력인증 환경공학 박상현박사, 비금속학 홍무식박사, 장영 향토서예가이며 재능기부교수, 전통춤 인간문화재 최윤희교수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했다. 이날 특별 학위수여식은 안나겸 행정실장의 사회로 이계항 교육행정학 박사의 개회선언 및 국민의례, 내외빈 소개, 함기철 이사장 인사말, 오장섭 전 건설교 통부 장관 축사, 한서대학원 노인복지학과 이인수 교수 축사, 영상 감상, 최윤 희 지도교수에게 위촉장 전달, 재능경력인증 특별 학위식 수여, 재능 경력인증 학위 수여자 윤리강령 및 재능기부 선서, 장영 재능기부 교수의 친필 붓글씨 선 물 증정, 한서대학교 고성진 교수 축가 순으로 진행됐다. 신한서 재능경력대학원 함기철 이사장은 세계 항공협회에서 최우수 대학으로 선정된 한서대학교를 1991년에 불모지땅 서 산 해미에 창시했다. 몸소 대학을 운영하며 깊은 통한을 느 꼈던 것은 교육부 산하 대학들이 거대한 괴물처럼 대학을 향 한 이 땅의 많은 젊은이를 수능과 입시라는 지옥에서 허덕이 게 하고, 대학에 들어와서도 등록금 지옥과 또다시 취업이란 지옥의 관문에서 꽃 같은 젊은 청춘이 제물로 바쳐지는 대학생활을 하는 걸 외면한 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수수방관하며 누구도 책임 있는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함 이사장은 2010년 퇴임 후 (8년 전) 신한서 재능경력대 학원을 설립해 이사장과 총장직을 겸임하면서 교육혁명의 선 구자로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신한서 재능경력대학원 교육제도는 각 산업현장이 학교가 되 고, 재능과 경력이 교육 수업일수로 환산되어 학위로 인정되 는 재능경력인증 시스템으로, 대한민국 특허청으로부터 발명 특허를 등록해 지적 재산권을 확보하고, 법률에 의거 신한서 재능경력대학원 영리법인으로 설립 등기를 마치고, 국세법에 의해 사업자등록 인가를 받아 재능경력인증, 자격증 부여 등 4개(재능 경력 중심 학점인정 학사관리 시스템, 재능기부은행 서비스업)의 항목으로 재능과 경력자들에게 학위를 수여하는 것이다. 이론 중심의 논문으로 받는 박사만 박사가 아닌 우리 학위와 서로 공존하는 시대를 맞이하여. 사회와 인류를 위해 공헌하 는 정직한 학위자들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
[부고안내]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배뱅이굿〉예능보유자 이은관씨 별세"신명나는 소리, 100살까지는 해야죠" 소리를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선생 최근에도 자신을 찾는 무대가 있으면 어디든 달려갔다. 한 공연장 무대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어느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있다. "왔구나! 왔소이다. 불쌍히 죽어 황천 갔던 배뱅이 혼신이 왔소이다, 오마니!" 그 주인공. 80년간 '배뱅이굿'의 대가로 살아온 98세 명창 이은관 선생이 3월 12일 오전 9시 30분 황학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슬하에 6남매를 두었으며 서울 황학동에서 아들(이승주) 며느리와 함께 살고 있었다. 빈소는 서울 성동구 한양대병원 영안실 2층 10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14일 오전 9시, 장지는 경기도 용미리 시립묘지이다. 이은관 선생은 1917년 11월 27일 강원도 이천에서 8형제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보통학교를 나온 뒤 철원고등학교 시절 마을 콩쿠르대회에 나가 ‘창부타령’과 ‘사설난봉가’를 불러 1등을 차지했다. 21세 때 철원에서 열린 국악 콩쿠르에서 민요부분에 1등으로 당선된 후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황해도 황주로 가서 서도소리를 본격적으로 배웠다. 서도소리 가운데 특히〈배뱅이굿〉에 흥미를 느껴 즐겨 불렀다.〈배뱅이굿〉이 일반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50년대말 그가 영화〈배뱅이굿〉과 각종 연예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음반활동을 활발히 하면서부터였다.〈배뱅이굿〉은 1900년경 용강군 출신의 김관준이 처음 불렀고, 그의 아들 김종조에게 전해졌으며 최순경· 이인수 등이 부르게 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이은관은 이인수에게 사사받았다. 해방 뒤엔 대한국악원 민요부에 속해 세월을 보내다 장소팔, 고춘자(高春子) 씨와 유랑 극단을 만들어 서민들과 울고 웃으며 그들의 친구가 되었다. 음반 취입, 영화 ‘배뱅이굿’ 주연, 라디오ㆍTV 출연 등으로 돈도 벌고 인기도 누릴 만큼 누렸던 그다. 미국, 일본, 베트남 등 명성만큼이나 해외 공연을 많이 다녔고 KBS 국악대상(1982년), 보관문화훈장(1990년), 2002년 제9회 방일영국악상도 탔다. 1975년부터 국악협회 이사로, 고문으로 활동했다. 〈배뱅이굿〉은 무가조(巫歌調)와 구슬프고 처량한 성조(聲調)가 많았는데, 그의〈배뱅이굿〉은 무대예술화되면서 무가조가 거의 빠지고 민요조(民謠調)가 강하며 재미를 더하기 위해 사설과 창법도 새롭게 도입되었다. 또한 음탕한 내용이나 욕지거리 부분은 일부 수정하기도 했다. 선생님의 소리제를 이어갈 제자들은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배뱅이굿 예능보유자 김경배,전수조교 박준영, 박성현, 전옥희, 이상호 등이 있다.
-
서도소리 배뱅이굿을 현대화 시킨 우리소리 뮤지컬 <내사랑 배뱅이> 4. 11❙ 공연 일시 : 2009년 4월 11일(토, PM 17:00)~12일 (일, PM 15:00) ❙ 관 람 료 : 전석 3만원 ❙ 주 최 : (사) 한국서도소리연구보존회 ❙ 문 의 : 02-2232-5749 / 016-407-6538 / postiv@naver.com ❙ 장 소 : 국립극장 KB청소년하늘극장 ❙ 제 작 : 사단법인 한국서도소리연구보존회 ❙ 협 찬 : 미래상호저축은행 ❙ 후 원 : (주) 풀무원 ■ 기 획 의 도 서도소리 배뱅이굿은 판소리가 한창 서울에서 활동무대를 펼쳐나가던 구한말 평양의 소리꾼 허덕선, 김관준에 의해 정립되어 관서지역에서 널리 공연되어 온 서도창이다. 2003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2004년 거창세계연극제에 초청되었고, 2005년 경남지역 11개 도시를 순회공연하였다. 이번 는 중요문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배뱅이굿을 「타악그룹 붐붐」과 함께 현대적인 뮤지컬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남녀노소 함께 즐겨볼수 있으며 온 가족이 함께 볼수 있는 작품으로 특히 국립극장 하늘극장은 우리 ‘굿’을 제대로 구현할수 있는 최적의 무대이다. ■ 배 뱅 이 굿 이 란 배우 한 사람이 등장하여 여러 사람의 역을 도맡아서 창(唱)을 불러 새신초혼(賽神招魂)하는 서도(潟) 지방의 연극적인 굿놀이. 조선시대 영조 ·정조 이래 구전된 것을 한말에 평남 용강의 김관준이 개작하여 아들 종조(宗朝)가 계승하였다. 김종조의 동료인 최순경, 이인수 등이 부르면서부터 널리 전파되었다. 구성은 황해도 소리가 중심이 되나, 경기 ·강원 ·함경의 민요 · 잡가 등을 사이사이에 넣어가며 남도 판소리의 ‘아니리’를 본받았다. . 극의 구성은 산천기도 ·현몽 ·배뱅이의 출생 ·성장 ·연애 ·배뱅이의 죽음 ·장사 ·무당의 굿 ·주막집 ·배뱅이의 마지막 굿날 ·귀로 등의 순서로 되어 있다. ■ 공 연 설 명 애잔함과 서글픔을 자아내는 음악적 구성이 탁월한 관서지방(황해도, 평안도)의 서도소리, 유일한 서도소리 창극 ‘배뱅이굿’을 전통 연희의 현대화 작업의 일환으로 재구성한 우리 소리극 남도소리를 중심으로 한 판소리 5바탕이 다양한 극화 형식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데 반해, 유일한 서도소리 창극 은 1인 창극의 형태로만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서도소리 명창 박정욱은 서도소리의 적극적인 대중화와 대한민국 창극계의 고른발전과 다양성을 도모하고자 뮤지컬 를 준비하였다. 2003년 예술의 전당 초연 이후 2004년 거창 세계 연극제, 2005년 경남 지역 11개 도시 순회 공연으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 줄 거 리 옛날 평양에 사는 한 건달이 부모님께 물려받은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강산 유람을 다니다, 서울 장안의 한 주막집에 당도하게 된다. 주막집 근처 어느 대가 집에서는 '진오귀 굿'을 하는 소리가 한참 들리는데... 한편 장안에 김, 이, 최정승이 재산은 많으나 슬하에 자녀가없어 명산대찰을 찾아가 백일기도를 하여 각각 딸하나씩을낳았는데, 최정승의딸이 '배뱅이'다. 이 셋은 쑥쑥 자라 둘은 시집을 가고 배뱅이만 남았는데 시주하러 온 금강산 마곡사 상좌중을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상좌중은 싸리나무로 엮어 만든 채독 속에 숨어서 배뱅이와 사랑을 나누다가 다시 오겠다며 떠나버리고 기다리던 배뱅이는 상사병으로 죽게 되고 최정승내외는애지중지하던외동딸을잃은슬픔을달래보고자 '진오귀 굿'을 벌이게 된다. ... '진오귀 굿' 소리에 유난히 관심을 보이는 평양 건달에게 주모는 배뱅이 죽음에 대해 자세한 내막을 이야기 해준다. 급기야 두 사람은 '엉터리 굿' 이라는 사기극을 벌이는데...
-
또랑광대 대중강좌- 이은관 선생님 판또랑광대 대중강좌 '또랑광대론' 제1편 이은관 선생! 때 : 2005년 7월 8일 오후 7시 장소 : 대학로 마루채 (대학우동 뒤편) 연락처 : 016-744-1654, 011-658-3625 준비 : 광대와 즐길 마음과 5,000원 (뒤풀이비 포함) 그동안 또랑광대 대중강좌 '판론'에 동참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또랑광대 전국협의회에서 3월부터 6월까지 4회에 걸쳐 '판론' 강좌를 펼쳤구요 이제 7월부터 12월까지 매월 첫째주 금요일에 '또랑광대론'이 펼쳐집니다. '또랑광대론'의 첫번째 강의를 해주실분은 배뱅이굿으로 유명한 '이은관' 선생님이십니다. 말씀하실 내용은 '나의 평생 광대 인생'입니다. 현재 90가까운 나이에도 후학들을 지도하고 계시고 섹스폰에도 일가견이 있으시고 활발한 공연을 하시는 '광대'이십니다. 이은관 선생님의 '나의 평생 광대인생'을 통해서 광대의 삶이 과연 무엇인지 많이 오셔서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이은관 선생은 1917. 11. 27 강원 이천~.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배뱅이굿〉의 예능보유자. 1931년 철원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21세 때 철원에서 열린 콩쿠르에서 민요부분에 1등으로 당선되어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황해도 황주로 가서 서도소리를 본격적으로 배웠다. 서도소리 가운데 특히 〈배뱅이굿〉에 흥미를 느껴 즐겨 불렀다. 〈배뱅이굿〉 이 일반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50년대말 그가 영화 〈배뱅이굿〉과 각종 연예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음반활동을 활발히 하면서부터였다. 〈배뱅이굿〉은 1900년경 용강군 출신의 김관준이 처음 불렀고, 그의 아들 김종조에게 전해졌으며 최순경·이인수 등이 부르게 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이은관은 이인수에게 사사받았다. 그는 '신불출 만 담일행'과 전국순회공연을 가졌으며 1941~45년에는 무대생활을 했다. 1946년에 대한 국악원에 입단했고 '민요국극단'을 조직·운영했는데 이때 주로 〈배뱅이굿〉을 공연했 다. 1968년 국악협회 간사를 맡았으며 같은 해에 민속예술학원을 설립하여 1992년 현 재 학원장을 맡고 있다. 1975년부터 국악협회 이사를 맡고 있고, 1984년 10월 예능보 유자로 지정되었으며 김경렬·김경선 형제에게 전수시키고 있다. 원래 〈배뱅이굿〉은 무가조와 구슬프고 처량한 ? 봐떠?많았는데, 그의 〈배뱅이굿〉은 무대예술화되면서 무가조가 거의 빠지고 민요조가 강하며 재미를 더하기 위해 사설과 창법도 새롭게 도입 되었다. 또한 음탕한 내용이나 욕지거리 부분은 일부 수정하기도 했다.
많이본뉴스
많이 본 뉴스
- 1제1회 '김법국국악상' 후보 3인, 심사
- 2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93)<br>강원도아리랑
- 3‘2024 광무대 전통상설공연’
- 4국립남도국악원, 불교 의례의 극치 '영산재', 특별공연
- 5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145)<br>한국 최초 '도깨비 학회', 아·태 도깨비 초대하다
- 6춘향국악대전 판소리 명창부 대상에 이소영씨
- 7국립민속국악원, '제6회 2024 판놀음 별별창극'
- 8서울문화재단, 클래식부터 재즈까지 '서울스테이지 2024' 5월 공연
- 9제3회 대구풍물큰잔치 ,19일 디아크문화관광장
- 10이무성 화백의 춤새(91)<br> 춤꾼 한지윤의 '전통굿거리춤' 춤사위